70년 복역의 때를 지나는 북녘의 남아 있는 그루터기 성도들

1945년 해방 후 한반도는 유엔의 신탁통치결정에 의해 남북한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북한은 소련의 지지를 받은 김일성이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집권과 동시에 자신의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기독교인들과 교회에 대한 탄압을 단행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핍박을 피해 월남하였습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전쟁을 도발하였고, 평양 대부흥의 영광을 맛보았던 북한의 교회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이 배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혹한 핍박과 탄압을 당하면서 믿음을 지켜온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우리는 그루터기 성도라 부릅니다.
지난 25년 동안 북한선교를 감당해온 일꾼이 이 그루터기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 고백을 정리하여 함께 나눕니다. 그러나 보안상 주의가 필요한 내용들은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못했습니다.


40년 만에 북한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사정없이 온 몸을 휘감는 겨울이었습니다.

첩첩산중 둘러싸인 험한 산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나는 눈이 쌓인 길을 걸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형은?” 이제 곧 만나게 될 가족들을 생각했습니다.

인적이 없는 산길을 3시간쯤 걸었을까? 저 멀리 예닐 곱 명이 추위에 옹기종기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전쟁으로 헤어진 뒤 처음 만나는 가족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거야? 어, 저 분이 어머니이구나…’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를 본 가족들은 재빨리 움막 같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뒤 나도 가족들이 들어간 곳을 따라갔습니다.

 그곳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을 둘러놓은 토굴이었습니다.

 ‘아, 가족들이 나를 안전하게 만나려고 은신처를 마련해 두었구나…’ 생각하며 나는 안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연기로 자욱한 토굴 안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등불을 켜 놓아야만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컴컴했습니다.

 나는 천천히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낯선 얼굴들뿐이었는데 아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영순이 누이? 누나구나. 영순이 누나 맞아?” 밖에서 볼 때 얼굴이 많이 늙어 보여 어머니로 생각했던 분이 알고 보니 누나였습니다. “그래 영식아, 내래 영순이 누나 맞아, 아이고 내 동생 영식이구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안고 한 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난 뒤에 누나는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했습니다.
“이 분이 네 외삼촌이야, 인사 드리라.”
모여있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 무엇보다 부모님 소식이 궁금해서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누이 그 동안 고생 많았지? 어떻게 살았어?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 계셔? 매형은?”
“아바지와 오마니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어, 네 매형도 같이…”
“아니, 부모님과 매형이 어떻게 한 날에 돌아가셨어?”
누나는 깊은 숨을 쉬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순교 당한 성도들과 산간오지로 추방된 그 가족들

“해방이 되었을 때 너도 평양에 있었으니 그 때 공산당에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당했던 핍박을 알고 있갔디?

그 때 목사님들이 많이 순교를 당했어. 전쟁이 끝나고도 핍박이 계속되었지만 우리 집에서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지.

 목사님이 없으니까 너희 매형이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인도했어.”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고 계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공산당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어.

그 때 20명이 넘는 성도들이 총살을 당했어. 아바지, 오마니, 매형도 기래서 한 날에 죽은 거야.

 그리고 성도들의 가족은 몽땅 산간오지나 탄광촌으로 추방 당했어. 나도 그 때 아이들하고 추방되어 이 산골로 온 거이야.”

김일성은 1953년 휴전이 결정되고 곧바로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1954년~58년까지는 기독교탄압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입니다.

이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했습니다.

 김일성은 공개처형 시킬 때마다 주민들을 모아놓고 “전쟁 때 미국 놈을 따라가지 못하고 반토굴 같은 데서 숨어 지내며 미국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놈들이다.”라고 호도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돌과 흙덩이를 던지게 하여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총살시켰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이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을 갖도록 선동했습니다.

이 시기에 누나와 조카들도 추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난 당한 순교자들의 가족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손으로 그들을 붙드시고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덮어 보호하신 순교자의 남은 가족들

“선천제일교회 OO장로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아내와 같이 깊은 산속에 있는 동굴로 숨어들었지. 긴대 공산당들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 동굴까지 쫓아와 죽창으로 찌르고 매질을 해 순교를 당했어. 그 아내는 남편이 순교하는 그 모든 장면을 보고 도망쳐 나와 자녀들에게 그 일을 전해주었디.” 사투리가 섞인 누나의 말이 계속되었습니다.
“남편이 순교를 당하고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기 막막했던 아내는 슬픔에 잠겨 있었디. 기때 비몽사몽간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름을 손으로 받아먹은 뒤부터 모든 슬픔과 눈물이 없어졌어. 그 이야기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지금도 그 분의 자녀들이 살아서 믿음을 지키고 있디.” 이렇게 말하는 누나는 당시의 고통이 다시 떠오르는 듯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순교자 가족들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는 주름진 누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져났습니다. 누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OO섬 이OO목사가 있었는데,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서 잡혀 들어가 고문을 많이 당했던 목사님이야. 긴대 해방된 후에 김일성에게 선거하지 않아서 다시 잡혀 들어가 순교 당했다 말이야. 기때 25살 밖에 안된 젊은 목사였는데, 어린아이들을 두고 순교를 당하니까 사모님이 매일 울면서 지냈다구. 그 날도 울면서 기도하는데 남편에게서 편지가 왔더래. ‘울지 말라, 내래 좋은데 왔으니 염려하지 말고 울지 말라.’는 편지였는데, 그거이 환상이지.
사모님은 환상으로 편지를 받은 그 시간부터 눈물을 그치고, 노예처럼 수모를 받으면서도 끄덕하지 않고 자녀들과 함께 믿음을 지키며 살다가 돌아가셨구. 그 자녀들이 지금도 믿음을 지키고 있어.”

해방이 되면서부터 기독교인들에 대한 혹독한 핍박이 계속되는 가운데서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성도들의 슬픔을 씻어 주시고, 그들로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들과 가족들이 순교를 당하고 추방된 후에 성도들은 북한공산치하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소리 없는 기도와 예배로 믿음을 지켜온 북한성도들

나는 잠결에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습니다. 가림막 천을 살며시 젖히니 누나와 어린 조카들이 빙 둘러 엎드려 있었습니다. 두 손을 모아 가린 얼굴을 방바닥에 대고, 무릎을 꿇어 엎드려 있고 엉덩이가 약간 높게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식구들을 따라 엎드려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찬송가도 없는데,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성경말씀을 외웠습니다. 누나가 먼저 성경을 외우자 조카들이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모두 다른 성경말씀을 줄줄 외웠습니다. 순간 나는 무슨 성경 말씀을 외워야 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을 외웠습니다. 성경도 찬송도 없이 읽는 소리였습니다. 습관이 되지 않아 기도하는 내 소리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는가 싶으면 곁에 있는 사람이 팔로 툭 치면서 주의를 주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새벽 4시가 되었는데 마침 내가 온 것을 알고 손님이 찾아와 있었기에 가족들은 어제처럼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벽을 향해 얼굴을 대고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누가 봐도 아무렇지 않게 무릎을 세운 뒤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손으로 턱을 괴고는 각자가 소리 없는 기도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누나는 추방이 되어 그 힘겹고 고달픈 생활을 연명해 오는 몇십 년 동안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1시가 되면 헛간에 나가 거적을 깔고 1시간씩 기도를 드려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허름한 내복차림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고 예배였지만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주체할 수 없는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소리도 낼 수 없으니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마음으로 통곡하며 나의 죄악을 회개했습니다. 지금까지 내 잘난 맛에 살았던 내 삶의 가치가 변화되는 자리였습니다. 한참 회개를 하고 나니 나의 마음과 영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키고 있는 성도들과 순교자 가족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더욱 확실하게 다가왔습니다. 하루를 누나와 조카들 곁에서 지내며 소리 내지 않고 의사를 표현하고 조심하는 것이 이들의 습관이 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혹독한 시련을 견디는 중에도 어떻게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줄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이들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사회 진출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집단으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오는 사람들입니다. " 어떻게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숨직이며 예배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믿음의 도제로 신앙유산을 대물림 하는 성도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인 5살이 되면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집으로 보내서 거기서 6개월 정도를 생활하도록 한단다. 물론 큰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는 믿음이 좋은 분들이지. 애들이 그 집에서 6개월 동안 놀면서 예배,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배우고, 기도하는 것도 배우고, 예수쟁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분들의 사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배우는거야. 또 어른들도 그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최우선적으로 애들을 그렇게 가르친다 말이야. 6개월z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때부터 가족들과 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거야.” 

누나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마침 그 곳에 데려온 만 5살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너 그거 하는 거 친구에게 가서 얘기 안했니?”라고 물으니까 “그러면 죽죠, 뭐”라고 어린아이답지 않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누나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예수쟁이로 어떻게 살라고 말하지 않고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말이야. 얼마 전에 우리 아이 중에서 공부를 잘해서 학교에서 상으로 신발을 받아왔었디. 기래서 아이 아버지가 상을 받아온 아이에게 이 신발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신발을 상으로 줬다고 하더라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상을 받아온 아이에게 아버지가 ‘그 신발 문밖에 내다 놓으라’고 시켰다구. 다음 날이면 그 신발이 없어지는데, 부모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은 상으로라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가르쳐 준다 말이야.”

누나에게 북한성도들이 자녀들을 교육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고,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던 바울의 고백을 생각했습니다. 결코 세상에서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유산이 도제교육을 통해 자녀들에게 대물림 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신앙교육이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성장한 누나의 아들과 딸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가는 것일까? 그것을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믿는 사이면 얼굴도 보지 않고 장애인이라도 결혼을 시킨다

“성도들은 무조건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을 시켜. 다른 조건은 아예 보지 않고 자식들을 결혼시키는거야. 다른 사람 얘기 할 것 없이 우리 집 얘기하면 되겠네. 우리 큰 아이(딸)를 17살에 시집 보냈어. 사위 아버지가 순교를 당했고, 어머니도 돌아가셨는데, 그 집에 살림을 해줄 사람이 없는 거야. 그 집 형편을 봐서는 누가 색시를 보내주겠냐? 그 집 사정이 딱하더라구. 그래서 그 집을 살려야 하니까 우리 큰 아이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가서 식구들을 돌보도록 했다 말이야. 그렇게 결혼한 거야. 둘째 아이도 순교자 집안으로 시집을 보냈고, 우리 며느리도 어른들이 순교한 집안에서 데려왔고, 여기는 다 그래. ”

이렇게 말하는 누나에게 그러면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을 시키느냐고 물었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나는 말했습니다. “얼굴을 못 보지. 여기서는 산골에 살아도 어떻게든 추방된 사람들 소식을 듣게 된다고. 기래서 어디에 있는 누구네 집에. 자식들이 몇 명 있는데, 첫째는 몇 살이고, 둘째는 몇 살이고… 이렇게 다 알고 있으니까, 기럼 첫째는 어디에 있는 누구네 아이랑 나이가 맞겠구나 해서 결혼을 시킨다구.” 구구절절 설명하는 누나에게 그러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결혼하지 않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결혼할 수 없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예수 믿는 거 다 탄로나고 알려지는데 어케 결혼하겠어. 그러니 예수 믿기만 하면 절름발이라도 결혼을 시키는 거야…”  
 
그루터기 성도들은 철저하게 믿는 가정으로 자녀들을 시집장가 보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자녀까지도 기꺼이 희생하였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녀들이 고생하는 것을 원할까요? 그러나 환난을 당하는 가정에 딸을 시집 보내서 그 가정을 돌보아 믿음의 가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돕고 세우며 믿음의 공동체를 지켜온 것입니다.
더욱이 탄압이 계속되는 북한체제하에서 믿음의 성도들과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장애인이라도 믿기만 하면 결혼을 시키는 성도들의 결단이 눈물겹기도 합니다.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은 70년 복역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실로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에 믿음의 구심점이 되는 지도자들로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게 하셨습니다. 그들 중에 한 지도자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25년 동안 환난 당한 북한 그루터기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입니다.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나의 누나는 이제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누나는 얼마 동안 치매를 앓았는데, 그 때에도 새벽 1시가 되면 어김없이 헛간에 나가서 가마니를 깔고 한 시간씩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고도 금방 밥 달라고 허튼 소리를 하고 이상한 얘기를 많이 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믿음에 관해 얘기할 때는 제 정신으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믿음에 관해서는 한 번도 허튼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과 주변에 믿는 성도들이 이것을 보면서 놀라워했습니다. 하나님은 치매가 걸린 상황에서도 누나와 공동체를 완전하게 돌보시고 보호해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것입니다. 혹독한 고난과 핍박이 몰아 닥친 70년 복역의 때가 지나는 동안, 하나님의 손이 친히 그루터기성도들을 붙드시고 지켜주심으로 오늘의 영광을 우리로 보게 하십니다.

그루터기 성도들은 해방되면서 지금까지 감시와 주시의 대상으로 낙인 찍힌 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가족공동체 안에서 신앙이 대물림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성도들이 믿는 자들과 결혼을 해서 자녀들을 출산하고, 또 다시 그들의 자녀들이 결혼해 출산을 하면서 믿는 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하셨습니다. 마치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이 400년이 지난 후 바로 왕이 두려워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로 늘어났듯이, 혹독한 핍박을 받은 북한성도들 또한 엄청난 수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자생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성도들이 더 강한 생활력을 갖춤으로, 서로 돕는 과정에서 끊어진 관계들이 회복되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루터기교회가 힘을 얻고 확장하는데 해외동포들의 지원이 힘이 되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그루터기 성도들의 신음을 듣고 해외동포들로 북한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핍박을 받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던 그루터기 성도들에게 해외동포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중국과 조선족 등을 통해서 북한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식량, 의류, 의약품, 금전 등의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그들로 북한 내부에서 힘있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안전을 위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재 북한내부에서 그루터기성도들을 통해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며, 구제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마음껏 소리 높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갔습네다!” 그루터기 성도들은 만날 때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자유롭게 예배할 날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기다립니다. 그 날을 기다립니다. 그 때를 기다립니다.”

북한성도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70년 복역의 때를 지나며, 예배당에 들어가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이 아픔이었고, 소리 높여 찬양할 수 없는 것이 고통이었고, 숨죽여 기도해야만 하는 것이 탄식과 신음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교회로 바칠 집을 지어놨습니다.”

최근에 하나님의 교회를 지어놓고, 그 곳에 모여 예배드릴 날을 고대하는 지도자의 고백은 내게 무한한 도전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끼를 먹고 살기도 힘든 북한실정에서, 교회를 지어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남한과 같은 교회당의 형태는 아니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이것은 어린 소년이 주님께 드린 오병이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씨앗이구나! 아,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통일을 준비하라고 하시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북한성도들처럼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마음 놓고 예배할 그 날을 사모하는 북한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을 하나님께서 어찌 듣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이 민족 가운데 복음으로의 통일을 행하셔야 하기에 우리에게 통일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으로의 통일을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70년 복역의 때를 지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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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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