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1월에 조선족으로부터 100권의 손바닥만한(우리는 ‘꼬마’라고 불렀다)성경을 요청 받았었다.

 그 성경은 북조선으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 요청을 하던 몇 달 전에 누가 다섯 권을 가져다 주었는데 다 보냈다면서 그것 가지고는 너무 모자란다고 전했었다.

그리고 내가 가져다 준 일반 크기의 한글 성경 250권을 받아 든 그들은 100권의 꼬마성경을 원했던 것이다.

 그 날 나는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 그 백성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한 백성들의 기도를 듣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그 날부터 살아있는 성도들을 만나고자 기도했다.

그리고 14개월 후인 1987년 1월 23일 저녁이었다. 만주 지역에 성경배달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오니 전화가 울려 수화기를 들었다.
“날래 날래 오라요~”라는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급히 택시를 타고 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작은 소리로 “북에서 사람이 왔어!”라고 말했다.

 “누군데요?” “예수쟁이야! 그런 사람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았소?

” 북에서 온 여인과는 그 집에 도착한 후 45분이 지나서야 만남이 이뤄졌다.

키가 아주 작았던 여인은 70이 훨씬 넘어 보였다. 얼굴은 아주 검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야기 도중에 여인의 나이가 49세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라고 물으니

“어디서 온 게 무슨 상관이야?”핀잔하듯 대꾸했다.
여인에게 어떻게 찬송을 부르는지를 물었다. “찬송? 공산당 노래에다 가사를 바꿔 붙여 불렀지~”

“기도는 어떻게 하시는데요?” 집에서는 기도는 소리를 못 낸다고 했다.

기찻길 옆에 있는 학교 뒤에 사는데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 때와 기차가 지날 때 기도한다고 했다.

여인은 중국에서 살다 1960년에 북한으로 이주해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생활도, 중국만큼의 자유도 주어져 있지 않아 하나님께 원망했다.

 그러다 하나님이 “내 이야기를 하라고 보낸 게 아니냐~”는 말씀을 들려주어 그 때로부터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친척들에게서 양식과 생필품, 의약품, 옷 등을 가져다 이웃에게 주며 전도를 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24년 동안 열두 가정을 전도했다. 여인은 그 성경을 보석이라고 불렀다.

조선족들은 북한에 성도들이 살아 있음과 돌봐 주어야 할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때서야 조선족들이 북한선교를 위한 통로였음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북한선교를 위한 후원을 시작했고 동시에 북한에 직접 들어가 확인하고자 하는 열망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리고 1989년, 처음으로 평양을 들어갔을 때 이미 준비된 성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없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지하교회가 없으면 세워주어야 할 책임은 없는가?

지하교회가 있으면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예배당은 없을 수 있다. 공개적인 예배는 불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십자가를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 두 사람 그리고 6·25 이전에 남아 있던 성도들,

그리고 그 여인이 전도한 열 두 가정은 지하교회의 일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나는 그 여인을 2004년 4월 22일까지 후원했었다. 여인은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용천역 폭파사건 때문에 가족 모두가 죽어버렸다.

 그 후 나는 북한의 지하교회를 찾게 됐고 성도들과 접촉을 했다.

평양을 드나들면서 이뤄진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신뢰할만한 사람들과의 만남 중에 성도를 만나고 돌아온 일은 나로 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성도들과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에서 탈북한 이들이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는 북한의 지하교회를 전혀 알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들과 만나고 있고 지금도 그 일은 진행되고 있다.

내가 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그들을 섬기는 일을 해오고 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핍박과 환난 속에서 살아 있는 게 분명하다.

로마의 카타콤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2000년 역사 속에서 교회는 핍박 중에서 성장해왔다.

 처음 복음이 들어간 곳은 어느 곳이던 상관없이 불법이었고 핍박이었고 고통이었다.

하지만 복음은 여전히 살아서 생명을 유지해 왔다

. “어려우시지요?”라고 묻는 나에게 70이 넘는 북한 노인은
“누가 쉽다고 했소? “형제가 나를 알아봐 주니 고맙지만 제가 정말 고마운 것은 언젠가 주님이 날 알아봐 줄 날이 있다는 게요,

 그리고 한 가지… 순교할 자신이 없어서 남쪽으로 도망한 사람들이 시작한 남조선교회가 변질되는게 안타깝소”

 우리는 그렇게 말한 뒤 헤어져야 했다.

그 날 나보다 5세 위인 아주머니는 어린 시절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인사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 목사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셨겠지만,

 미국에서든 남조선에서든 목사님 한 분이 오셔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여인의 말을 못 들은 체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 아주머니의 소원을 오늘 들으셨는가 봐요”라고 했다.

그 때 여인은 내게 소리를 내지 않고 “목사님, 목사님?“이라고 말하며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며 울고 있었다.

내가 평양에서 1972년생의 젊은이를 만났을 때 그는 17세였다.

그에게 “소원이 뭔가?”물었다. 한 달에 20원을 번다고 했다.

 돈을 달라는 말로 이해하고 미화 500달러를 주었다.

 그러나 소년은 “십일조를 모아놓았는데 보낼 데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소년의 소원은 십일조를 마음 놓고 해보는 것이었다.

판문각의 소좌는 내 손을 꼭 쥐며 “오래 사시라요! 십자가의 도를 아무도 들려준 사람이 없는데…

목사님이 그렇게 하셨으니 오래 사시라요..”라고 했다.
북한에는 우리가 접촉하는 3만 7천의 성도가 있고 10여만 명의 수용소 수감자들이 기독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니 방송을 통해 복음을 듣는 자가 있다. 전도지 풍선을 받아 든 한 할머니는 “잊혀진 줄 알았는데…

국군이 오면 이 걸 들고 나가자!”라고 했단다.

복음풍선이 하는 일도 있었다.

중국을 드나드는 이들 가운데 지하교회를 개척한 수가 1,500개가 넘는다

. 바울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한다고 기록하지 않았는가?(딤후 2:9)

이 말씀에 <북 조선은 예외다>라고 기록해 놓았던가?

북한교회를 알고 있는 조선족 목사는 “북조선에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알려 주었다.

 실제로 북한에서 어떤 이유로든 교회가 팽창하고 있다. 지하교회가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워하지 않도록 훈련되었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배웠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기꺼이 피 흘리고 있고,

우리는 여기서 준비할 테니 당신들은 남한교회가 준비되도록 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 날에북한 땅이 남한만큼 자유로워질 그 날에 우리는 그들이 경험한 고난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북한에 남겨 둔 뜻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한 노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남겨 둔 줄 아느냐?‘는 질문에

 “예” 로 답하고 북한으로 돌아가 그와 함께 했던 65명의 생명을 모두 4~5년에 걸쳐 잃어야 했다

. 그 한 사람의 순종이 모두의 생명을 잃도록 만들었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도 북한에 살아 있어 여기에 다 말할 수 없는 북한 성도들의 이야기가 있다.

 깊이 있는 조선족 성도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수십 년간의 과정을 통해 북한에 성도가 살아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북한성도를 돕는 일을 선교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도왔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은밀한 말로 서로 교제하고 있었고 나누고 있었으며 섬기고 있었다.

조선그리스도교 연맹의 위원장이었던 고기준 목사님은 나의 선친과 평양신학교 동기이시다.

 나는 그에게 톰슨 주석 성경 75권을 가져다 드렸다.

그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이렇게 해서라도 북조선에 복음이 꽃 필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알겠소?”라고 말이다.

 그 75권의 톰슨 주석 성경은 그에 의해 어딘가에 나뉘어졌고 쓰여지고 있다.

나는 그가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한다. 그 마음을 헤아릴 능력도 없다.

 그러나 그의 소원이 북한에 복음이 꽃 필 날이라고 하지 않는가? 무슨 의미였을까? 북한의 지하교회는 살아 있다.
곧 아주 빠른 시일 안에 북한의 지하교회가 지상교회로 바뀌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내 몸이 모두 망가지고 핍박으로 인해 고난 속에 빠질지라도 말이다.

그 곳의 4,781지역의 고을마다 자유로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오늘 우리는 피와 땀을 흘리며 수고한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없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무익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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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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